
게임 빨리 깨는 걸 왜 며칠씩 보고 있냐면
규칙을 알고 보면 안 해 본 게임도 재밌어져
스피드런은 게임 하나를 골라서 시작부터 끝까지 걸린 시간을 재는 거야. 규칙은 부문마다 달라. 숨은 것까지 전부 모으고 끝내야 하는 부문이 있고, 뭘 건너뛰든 상관없이 시간만 짧으면 되는 부문이 있어. 같은 게임인데 부문이 다르면 아예 다른 경기가 돼.
기록을 1초 줄이려고 같은 구간을 몇백 번씩 다시 달려. 그러다 보면 만든 쪽이 의도하지 않은 지름길이 나와. 벽을 통과하거나 정해진 순서를 건너뛰는 방법 같은 거. 처음 보면 그냥 버그처럼 보이는데, 그걸 실전에서 매번 성공시키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야.
그래서 보는 재미가 생겨. 축구도 저 선수가 지금 뭘 하려는지 알면 훨씬 재밌잖아. 스피드런도 똑같아. 이 구간에서 뭘 노리는지만 알면, 그 게임을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 눈에도 성공과 실패가 그대로 보여. 러너 손이 한 번 미끄러졌을 때 객석이 왜 조용해지는지도 그때 알게 되고.
무대에 소파를 놓고 편성표대로 밤새 달려
마라톤이라고 부르는 건 진짜로 며칠 동안 안 끊기기 때문이야. 무대 위에 소파랑 화면을 놓고, 편성표에 적힌 순서대로 러너가 한 명씩 앉아. 앞사람 게임이 끝나면 다음 사람이 바로 이어받고, 그게 새벽에도 계속돼. 앞쪽엔 객석이 있고 뒤로는 큰 스크린에 게임 화면이 그대로 뜨고, 전부 생중계돼.
편성표가 이 행사의 뼈대야. 어떤 게임을 몇 시에 누가 달리는지 미리 다 공개돼 있어서, 보고 싶은 시간만 골라 들어와도 돼. 아주 옛날 게임 다음에 최근 게임이 오고, 혼자 달리는 순서 뒤에 여럿이 나란히 달리는 순서가 오기도 해. 종일 틀어 놔도 안 지겨운 이유가 여기 있어.
옆에는 해설이 앉아. 러너는 손이 바빠서 말을 길게 못 하거든. 그래서 지금 왜 저 길로 도는지, 이 구간이 왜 어려운지를 해설이 대신 풀어 줘. 게임 이름조차 처음 들어 본 사람이 한 시간을 붙어 있게 되는 건 거의 이 사람들 덕분이야.
기부가 화면 안의 선택을 바꿔
이 행사에는 기부 인센티브라는 장치가 있어. 목표 금액이 모이면 러너가 더 어려운 조건으로 한 번 더 달리고, 두 갈래 선택지에 기부를 나눠 넣어서 더 많이 모인 쪽으로 게임 속 선택이 정해지기도 해. 주인공 이름을 뭐로 할지가 기부로 정해지는 순서도 있고. 보는 쪽이 화면을 실제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 기부창이 그냥 후원 버튼이 아니게 되는 거야.
이 형식이 자선이랑 잘 맞아. 며칠짜리 방송은 계속 켜 놓을 이유가 필요한데, 지금 이 순간 모금액이 올라가는 걸 같이 지켜보는 것만큼 확실한 이유가 없거든. 러너는 상금 때문에 나오는 게 아니고, 진행도 자원봉사가 많아. 실력을 보여 주는 자리랑 돈을 모으는 자리가 한 무대에서 겹치는 구조야.
숫자로 보면 이래. 올해 7월 5일부터 11일까지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Hilton Minneapolis Downtown에서 열린 Summer Games Done Quick은 2,409,821달러를 모아 국경없는의사회에 전달했어.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독일 쾰른의 Koelnmesse에서 열린 gamescom GDQ는 Gaming4Democracy를 위해 18,025유로를 모았어. GDQ는 Games Done Quick의 줄임말인데, 이 시리즈가 미국 밖에서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야.
다음 차례는 온라인에서 열려
가장 가까운 건 Flame Fatales야. 9월 13일에 시작해서 일주일간 온라인으로만 진행돼. 무대도 객석도 없이 러너들이 각자 집에서 이어 달리는 형태고, 여성 러너와 여성 정체성을 가진 러너가 함께 달리는 행사야. 모인 돈은 Malala Fund로 가.
Flame Fatales가 속한 Frame Fatales 계열은 지금까지 Malala Fund에 100만 달러 넘게 전달했어. 한 번에 크게 모은 게 아니라 매년 조금씩 쌓인 숫자야. 그리고 내년 1월 3일부터 10일까지는 미국 애틀랜타의 Hilton Atlanta에서 Awesome Games Done Quick이 열려. 이번 수혜 단체는 Prevent Cancer Foundation이고.
보다 보면 내 기록도 재 보고 싶어져. 두유박스 반응속도 테스트는 다섯 번 재서 평균을 뽑아 주니까, 한 번 잘 찍은 운이 아니라 진짜 내 속도가 나와. 사이먼 게임은 색 순서를 외워서 그대로 다시 누르는 건데, 러너들이 루트를 통째로 외우는 감각이랑 제일 가까워. 슬라이드 퍼즐은 처음엔 한참 걸리다가 몇 판 하고 나면 어디부터 밀지 손이 먼저 알게 되고. 같은 구간을 몇백 번 다시 달리는 이유가 그거야.